내적 통제 소재와 외적 통제 소재

휴튼 글쟁이
2022년 10월 17일
<p>엠제이 드마코의 책 "언스크립티드"를 읽고 있습니다. 3~4년 전에 한번 읽었다가 오랜만에 읽는 중인데요, 조금 더 자주 읽고 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걸 하는 후회가 남네요. 책의 내용 중 <b>"통제 소재"</b>라는 개념이 있어서 소개드리려 합니다.</p><p>통제 소재는 원래 <b>locus of control</b>이라는 심리학 용어인데요, <b>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자기의 영향력의 크기에 대한 개인적 믿음</b>이라고 합니다. 즉,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내가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지에 대한 개념입니다.</p><p><br></p><p>통제 소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b>외적 통제 소재</b>, 다른 하나는 <b>내적 통제 소재</b>입니다.</p><p>엠제이 드마코는 <b>내적 통제 소재</b>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주변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통제할 힘을 갖고 있다고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외적 통제 소재는 그 반대겠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의 원인은 밖에 있기 때문에 내가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 경우입니다.</p><p><br></p><p>책에는 엠제이 드마코의 일화가 하나 소개됩니다. 그는 25년 동안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시카고의 한 동네에 살았는데,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우울증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 내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햇살이었고, 나는 성공 자체보다는 햇살을 더 강렬하게 갈망했다. (…) 나는 볕이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며 내 신세를 한탄했다.”</p><p>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징징거리는 것을 듣다 못한 그의 여자친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해요. 그렇게 비참하다고 느끼면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요. 엠제이 드마코는 그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자신에게도 ‘이사’라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얼마 뒤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p><p><br></p><p>그냥 코웃음 나오는 일화일 수도 있는데요, 생각해보면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b>내 상황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며 신세 한탄만 하는 사람들</b>. 주변에 한 명 쯤은 있지 않나요? (그게 나일지도?)</p><p><br></p><p>엠제이 드마코는 이 일화를 두 가지의 포인트로 정리합니다.</p><p><b>하나.</b> 내적 통제 소재, 즉 내가 나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같은 고차원적인 가치는 허구에 불과하고, 나는 그냥 복권이나 사면서 몽상에 젖어 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p><p>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을 그것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다. 당신은 그것을 하거나 계속 그것에 대해 꿈만 꾸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 <b>당신은 행동하기로 선택하거나 불평하기로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b> 배에 찔리는 못을 그대로 깔고 자는 개가 되지 말라. 바닥에서 튀어나와 있는 못이 배에 느껴지면 몸을 일으켜 망치를 집어 들고 못을 빼거나 새 집을 찾아 나서라.”</p><p><br></p><p><b>둘.</b> 내적 통제 소재가 행복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b>사람은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상황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b> 즉,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알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죠.</p><p><br></p><p>통제 소재라는 개념을 알고 난 뒤 떠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b>장 폴 사르트르</b>인데요. 사르트르는 <a href="https://heuton.kr/curation/original/36?from=internal_link" target="_blank"><font color="#ed6f63"><u>“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u></font></a>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늘 선택에 직면하는데, 그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내가 져야 하니까요.<br></p><p>이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인간이 ‘<b>자기기만</b>’을 한다고 말합니다. 즉, <b>마치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b>이죠. 나에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믿고, 외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 역시 외적인 요소에게 있다고 생각하죠.</p><p><br></p><p>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지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a href="https://heuton.kr/curation/original/16?from=internal_link" target="_blank"><font color="#ed6f63"><u>다른 글</u></font></a>에서 다루었습니다.</p>

엠제이 드마코의 책 "언스크립티드"를 읽고 있습니다. 3~4년 전에 한번 읽었다가 오랜만에 읽는 중인데요, 조금 더 자주 읽고 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걸 하는 후회가 남네요. 책의 내용 중 "통제 소재"라는 개념이 있어서 소개드리려 합니다.

통제 소재는 원래 locus of control이라는 심리학 용어인데요,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자기의 영향력의 크기에 대한 개인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즉,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내가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지에 대한 개념입니다.


통제 소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외적 통제 소재, 다른 하나는 내적 통제 소재입니다.

엠제이 드마코는 내적 통제 소재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주변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통제할 힘을 갖고 있다고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외적 통제 소재는 그 반대겠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의 원인은 밖에 있기 때문에 내가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 경우입니다.


책에는 엠제이 드마코의 일화가 하나 소개됩니다. 그는 25년 동안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시카고의 한 동네에 살았는데,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우울증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 내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햇살이었고, 나는 성공 자체보다는 햇살을 더 강렬하게 갈망했다. (…) 나는 볕이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며 내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징징거리는 것을 듣다 못한 그의 여자친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해요. 그렇게 비참하다고 느끼면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요. 엠제이 드마코는 그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자신에게도 ‘이사’라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얼마 뒤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그냥 코웃음 나오는 일화일 수도 있는데요, 생각해보면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내 상황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며 신세 한탄만 하는 사람들. 주변에 한 명 쯤은 있지 않나요? (그게 나일지도?)


엠제이 드마코는 이 일화를 두 가지의 포인트로 정리합니다.

하나. 내적 통제 소재, 즉 내가 나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같은 고차원적인 가치는 허구에 불과하고, 나는 그냥 복권이나 사면서 몽상에 젖어 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을 그것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다. 당신은 그것을 하거나 계속 그것에 대해 꿈만 꾸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 당신은 행동하기로 선택하거나 불평하기로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 배에 찔리는 못을 그대로 깔고 자는 개가 되지 말라. 바닥에서 튀어나와 있는 못이 배에 느껴지면 몸을 일으켜 망치를 집어 들고 못을 빼거나 새 집을 찾아 나서라.”


둘. 내적 통제 소재가 행복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상황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즉,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알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죠.


통제 소재라는 개념을 알고 난 뒤 떠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인데요.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늘 선택에 직면하는데, 그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내가 져야 하니까요.

이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기기만’을 한다고 말합니다. 즉, 마치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죠. 나에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믿고, 외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 역시 외적인 요소에게 있다고 생각하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지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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