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최정상까지 갔다가 추락해버린 남자의 이야기 - 2/2

마크 캐번디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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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아버지
Aug.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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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레터에 이어 마크 캐번디시(Mark Cavendish)와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난 레터에서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끊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질타 아닌 질타(?)를 받기도 했는데요, 일주일 기다리신 보람이 있도록 오늘 재밌게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지난 이야기

지난 레터를 간단하게 리캡해드릴게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고 오시는 걸 강력히 권장드립니다)

마크 캐번디시는 영국의 프로 사이클링 선수로, 명실상부 세계 챔피언입니다.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서 '개별 경기 30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었죠. 역대 최다 기록인 에디 메르크스 선수의 34회까지 단 네 개의 우승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경기 도중 벌어진 큰 사고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얻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만성피로 증후군(CFS)라는 질병까지 얻어 그는 큰 슬럼프를 겪습니다. 부상과 질병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주변의 시선입니다. 30대 중반을 향하던 그는 "마크 캐번디시는 이제 나이도 들고 한물 간 선수다"라는 여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여론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제로 그의 성적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재기를 노리며 2019년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기로 합니다. 여기에서 모두가 틀렸음을, 자신은 아직 건재한 세계 챔피언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렇게 야심차게 도전한 2019 투르 드 프랑스, 마크 캐번디시는 엔트리에서 빠지게 되며 대회에 출전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2019년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죠.

팀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상심한 마크 캐번디시는 결국 팀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팀인 '바레인 맥라렌'에 합류합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은 그는 드디어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될까요?


2020년

2020년 초, 바레인 맥라렌에 합류하자마자 그는 한 사이클링 대회에 출전합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난데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겁니다. 새로운 팀을 찾아 다시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라도 한 걸까요?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습니다. 마크 캐번디시는 여전히 부진한 경기를 이어갔고, 이번이 자신의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주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결국 여론이 옳았던 것입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가장 이상주의적인 사람조차도 마크가 과거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은 잃은 때였습니다. (...) 다들 왜 마크가 여전히 달리는지, 왜 여전히 경기에 참여하는지 궁금해했죠."

그리고 그 여름에 열린 2020 투르 드 프랑스, 그는 작년에 이어 또다시 엔트리에서 탈락합니다. 세계 챔피언의 추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귀인이 한명 나타납니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드쾨닝크 퀵스텝'이라는 팀의 CEO 패트릭 르페베르(Patrick Lefevere)가 그에게 연락합니다. 팀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많은 돈을 줄 수는 없지만, 네가 가진 잠재력을 믿으니 우리 팀으로 오라는 겁니다. 결국 마크 캐번디시는 이전 팀과의 계약을 1년만에 해지하고 드쾨닝크 퀵스텝으로 옮기게 됩니다.


2021년

새로 합류한 팀에서 만난 그의 새로운 코치는 바실리스 아나스토풀로스(Vasilis Anastopoulos). 한번에 발음하기 불가능한 이름입니다. 그는 드쾨닝크 퀵스텝 팀의 CEO와 함께 그를 믿어준 몇 안 되는 사람이었죠.

바실리스 코치는 훈련에 항상 동참하고, 필요할 때는 거세게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마크 캐번디시는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인해 훈련이 유독 힘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평하지 않고 잘 따라갔습니다.

바실리스 코치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크는 마치 생애 첫 우승에 목마른 스무 살 같았습니다. (...) 훈련 중에 죽은 듯이 바닥에 뻗고 구토를 할 정도였어요. 한번은 마크가 저에게 당신이 싫다고 얘기했고 저는 '고맙다'고 했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제가 밉다는 건 좋은 신호니까요."

하지만 투르 드 프랑스는 워낙 쟁쟁한 대회입니다. 세계 최고의 사이클링 선수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현실적으로 마크 캐번디시는 이제 다시 넘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투르 드 프랑스 참가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고 얘기했죠. 바실리스 코치 역시 지난 3년 동안은 경기를 제대로 완주하지도 못한 선수가 어떻게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 은 없습니다. 그의 실력은 꾸준히 나아졌지만, 팀에는 샘 베넷(Sam Bennett)이라는 최고의 스프린터가 이미 있었고 투르 드 프랑스에 마크 캐번디시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는 3년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선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생깁니다. 샘 베넷이 대회 직전에 무릎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팀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마크 캐번디시를 전적으로 믿어준 팀의 CEO의 결정으로 마크 캐번디시는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하게 됩니다. 하늘이 준 기회였습니다.

패트릭 르페베르 CEO는 당시 결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 마크의 야심과 의욕을 느꼈죠. (...) 챔피언들은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늘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마크 캐번디시의 나이는 벌써 서른 여섯이었습니다. 운동 선수 치고는 나이도 많은데다가 이미 몇 년 째 가파른 하락세를 걷고 있던 그가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뉴스였죠.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저 사람이 아직도?'라는 생각과 함께 회의감에 가득 찬 눈길로 그의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투르 드 프랑스의 21개 경기 중 네 번째 경기. 마크 캐번디시는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전력질주하여, 앞으로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우승을 극적으로 따냅니다.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던 대회에서 5년만에 맛보는 우승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그는 주저앉아서 (또) 눈물을 터뜨립니다.

이제 그의 개인 통산 기록은 투르 드 프랑스 개별 경기 우승 31회. 역대 최다 기록인 에디 메르크스의 34회까지 불과 세 개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투르 드 프랑스는 총 21개의 경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두가 퍼붓던 의심과 냉소를 떨쳐내고 복귀한 세계 챔피언은, 선수 생활을 통틀어 딱 한번도 어렵다는 투르 드 프랑스 개별 경기 우승을 그 해에만 총 네 개를 따내며 결국 에디 메르크스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고 맙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투르 드 프랑스 출전은 언감생심이었던 선수 맞나요?


2024년

사실 2022년과 2023년은 또다시 그에게 쉽지 않은 해였습니다. 하지만 힘든 얘기는 많이 했으니 이제 그만하도록 하죠.

역대 최다 우승 기록까지 단 하나의 우승만을 남겨두고 있던 그는, 오늘 기준으로 한달 전에 열린 2024년 투르 드 프랑스의 다섯 번째 경기에서 1등으로 들어오며 결국 <투르 드 프랑스 역대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가 됩니다. 최정상에서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한 남자가 기어이 자신의 기록을 깨고 전설이 된 것이죠.

당시 경기의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의 링크를 첨부드리니, 오늘처럼 더운 날 소름 돋고 싶다면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하늘색 유니폼의 "M. Cavendish" 선수가 마크 캐번디시입니다.


마크 캐번디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불과 한달 전에 마무리된 따끈따끈한 소식이었습니다.

최정상에 있다가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한 삶은 어땠을까요. 지금은 결국 모든 것이 잘 풀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답게(?) 풀어낼 수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을 것 같습니다. 이 고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고통이 끝나면 다시 이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상상되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고통 그 자체보다는 '불확실성'인 것 같습니다. 이 고통이 곧 끝날 거라는 걸 미리 알면 그래도 그 끝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지만, 이 고통이 얼마나 오래 갈지, 혹시 더 심해지지는 않을지, 이러다가 내 삶이 영원히 망가지는 건 아닌지 등의 불확실성 속에서는 심리적으로 먼저 무너지게 되는 것 같아요.

바로 그래서 마크 캐번디시가 버텨온 5년이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기간을 버텨낸 경험이 있으신가요? 휴튼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눠 보세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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