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최정상까지 갔다가 추락해버린 남자의 이야기 - 1/2

마크 캐번디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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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아버지
Aug.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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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완전히 빠져있는 스포츠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사이클링입니다. 직접 타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고, 넷플릭스의 한 다큐를 통해 접했다가 그 매력에 매료되었습니다. 사이클링에 대해서 1도 몰라도 오늘 레터는 쉽게 읽으실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쭉쭉 읽어주세요.


영국의 프로 사이클링 선수 마크 캐번디시(Mark Cavendish)는 전설적인 사이클리스트를 거론할 때 항상 언급되는 선수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기량을 발휘했고,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부터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프린터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실 워낙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그가 겪었던 어려움을 얘기해도 딱히 공감이 잘 되지 않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이건 악마도 너무했다고 혀를 내두를 것 같습니다.


'스프린터'란 단거리 경주에서 폭발적인 속도를 내며 앞으로 치고나가는 선수를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클링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 대해서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는 21일 동안 치뤄지는 사이클링 대회입니다. 하루에 하나씩 경기가 열리고, 팀 단위로 선수들이 참가합니다. 각 경기의 코스는 약 150km에서 200km 정도의 길이로, 편차는 있지만 선수들은 보통 5시간 내외로 달립니다.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니 생각만 해도 집에 가고 싶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최대한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이기겠네? 하겠지만, 코스가 워낙 길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경기 내내 체력을 전략적으로 잘 분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코스는 큰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산악 스테이지도 있고, 비교적 🛣️평지에서 달리는 스테이지도 있습니다. 이렇게 코스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 선수마다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경기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몸이 가볍고 지구력이 강한 선수라면 산악 경기에서 유리할 겁니다. 이들을 클라이머라고 합니다. 반대로 몸집이 좀 크고 다리 힘이 강한 선수라면 짧은 시간동안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겠죠. 이들을 스프린터라고 합니다. 특히 스프린터는 마지막 결승선에서 엄청난 속도를 내 승리를 쟁취하는 포지션입니다.

경기가 21회나 있으니 좀 널널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이클링 선수에게는 단 하나의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전체 커리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대회입니다.

다시 마크 캐번디시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한번도 어렵다는 투르 드 프랑스의 각 경기 우승을 2008년부터 2016년까지 30개(!)를 따냅니다. 역대 최다였던 34개 타이 기록을 코앞에 두고 있었죠.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로, 프로 선수 치고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무난하게 최다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017년

그러던 마크 캐번디시에게 운명의 날이 찾아옵니다. 2017년에 열린 투르 드 프랑스의 네 번째 경기,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전력질주를 하던 마크 캐번디시는 바로 옆에서 달리며 우승을 노리던 피터 사간(Peter Sagan)의 팔꿈치에 부딪혀 넘어지고 맙니다.

넘어졌다는 말은 너무 온화하네요. 보호 장구라고는 헬멧밖에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시속 70km/h로 달리던 그는 피터 사간의 팔꿈치에 부딪혀 펜스에 세게 충돌합니다.

사이클링은 원래 위험하고 부상도 잦은 스포츠입니다. 이 사실을 감안해도 이 사고는 끔찍한 사고였고, 이로 인해 마크 캐번디시는 검지 손가락이 찢어지고 어깨뼈에 구멍이 나는 등의 심각한 부상을 입습니다. 그렇게 투르 드 프랑스의 1/4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경기를 포기하게 되죠. (피터 사간 선수는 실격 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술을 받고, 재활을 받으며 회복을 시작합니다. 저야 이렇게 한 문장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 다시 경기를 뛴다 해도 이전과 같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을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재활을 받던 그는 유난히 몸이 피곤하고 무기력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며칠 연속으로요. 그는 "마치 시차 적응이 안 된 것처럼" 늘 피곤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상함을 느낀 마크 캐번디시는 팀 주치의를 찾아가 혈액검사를 받았고, 앱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앱스타인-바 바이러스는 만성 피로 증후군(CFS)라는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하루종일 피로를 느끼는 거죠. 더 안타까운 건 병을 호전시킬 수 있는 약도 없다는 겁니다. 세계 최정상에 있던 선수에게 닥친 겹재앙이었습니다.


2018년

제가 저렇게 다쳤으면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은데, 마크 캐번디시는 프로 선수답게 빠르게 재활을 마치고 이듬해 초반 한 사이클링 대회에 참가합니다. 2017년의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회복을 잘 했고, 바이러스가 가져온 병도 많이 호전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불운의 세계 챔피언은 또다시 사고를 당합니다. 경기 도중 도로 위에 있는 구조물을 들이받은 것이었습니다. 충돌 후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바닥으로 꽂힌 마크 캐번디시는, 뒤에서 빠르게 따라오던 선수들에게 밟히고 치여 또다시 큰 부상을 당합니다.

어이없는 사고였습니다. 그 코스는 마크 캐번디시에게 익숙한 도로였다고 하거든요. 프로 사이클링 선수가 자신에게 익숙한 코스에서 구조물에 부딪히다니, 언론은 이 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제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마크 캐번디시가 늙어서 순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챔피언은 챔피언인가 봅니다. 그는 완벽하진 않지만 빠르게 회복하여 그 해의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참가합니다. 여론은 좋지 않았죠. 마크 캐번디시 이제 한물 간 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가 투르 드 프랑스 최다 경기 우승인 34회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고 합니다.

2018년 투르 드 프랑스는 그에게 재기의 기회였습니다.

연초에 있었던 사고로 인해 자신에게 던져진 수많은 의구심들을 떨쳐낼 절호의 찬스였죠. 누가 뭐래도 그는 벌써 30개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였습니다. 심지어 태어난지 일주일 된 아기를 집에 두고 경기에 참가했기 때문에 더욱 잘해야 했죠. 이전의 마크 캐번디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7월 18일에 열린 투르 드 프랑스의 11번째 경기. 험준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알프스 산악 구간의 경기에서, 마크 캐번디시는 우승은커녕 제한 시간 내에 결승선에 들어오지 못해 대회에서 중도 탈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의 2018 투르 드 프랑스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2019년

부진한 성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듬해인 2019년. 마크 캐번디시는 시즌 초반에 있던 한 대회에서 (이미 낮아질대로 낮아진)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냅니다. 과거의 화려한 마크 캐번디시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부상과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마크 캐번디시는 속해있던 팀에서도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팀의 경영진은 그가 슈퍼스타였던 과거에는 후원사들을 설득하기 좋은 카드였지만 이제는 나이도 많고 느려져서 별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마크 캐번디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2019년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여 우승을 따내는 것이었습니다. 우승 한 번만 따내면 지금까지 자신에게 제기되었던 모든 의구심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시즌 초반부터 열심히 훈련하며 준비합니다.

그 간절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을 하기로 되어있던 그는 팀 경영진의 판단에 의해 막판에 그 해 엔트리에서 빠지게 됩니다.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입니다.


마크 캐번디시는 한때 전설로 불리던 선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엄청난 노력, 그리고 강한 멘탈이 합쳐져 사이클링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우고 있었죠. 하지만 잇따라 일어난 불의의 사고와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한꺼번에 찾아와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한때 세계 챔피언이었던 이 선수는 머지않아 심각한 우울증을 갖게 되고, 아내와는 전에 없던 불화를 겪습니다. 불과 3년만에 그는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팀 주치의는 그가 자해 또는 심지어 자살을 할까봐 심각하게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전 가진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고 뭘 하지도 않고 아무 감각도 없었죠. 그냥 공허했어요. (...) 한 인간, 아빠, 친구, 남편으로서 제가 가졌던 모든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내용이 길어져서 뒷내용은 다음 레터에서 이어서 소개드리겠습니다. 최정상에 있다가 끝없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친 마크 캐번디시는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처럼 조용히 은퇴하게 될까요? 다음주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미리 찾아보기 없기입니다.


여러분은 잇따른 실패로 자신감이 크게 떨어진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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