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2 - 아리스토텔레스

경험을 통해 얻어진 나만의 지혜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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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아버지
July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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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레터의 새로운 시리즈,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시리즈의 두 번째 글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고대부터 내려온 질문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자기만의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이 정도면 사색과 성찰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고대 때부터 시작하여 각 시대의 철학자들이 이야기했던 '좋은 삶'을 다뤄 보려고 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한 주에 하나씩 소개드릴게요.

지난주의 주인공은 테스형이었고요, 두 번째 주인공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사실 소크라테스 다음으로 플라톤이 뒤를 잇는 것이 마땅하지만, 플라톤은 개인의 삶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철학을 더 많이 펼친 사람이어서 스킵하고 아리스토텔레스로 넘어가겠습니다)


테스형의 제자의 제자

기원전 384년경,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의 아기가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납니다.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왕실의 의사였거든요. 그전까지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소크라테스의 고향)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아테네는 쇠퇴기를 맞이하고 그리스 전역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철학적으로는 활발한 발전이 이뤄지고 있었죠.

금수저답게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세운 학교(아카데미)에서 공부합니다. 무려 20년 동안! 또 금수저답게 그는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며 철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도 폭넓게 공부합니다.실제로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에 큰 업적을 남깁니다. 또 금수저답게 그는 그 유명한 알랙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일합니다. 부럽네요.

플라톤의 학교에서 공부했던만큼 그는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의 철학을 계승하는 한편 어떤 부분은 비판하기도 하며 점차 자기만의 철학을 세워나갑니다.

이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주요한 개념 몇 가지를 소개드릴게요.

1. 행복(Eudaimonia)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에는 각각 고유한 목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바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죠. 참고로 그가 말한 목적을 Telos(텔로스)라고 부릅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척 할 때 써먹어 보세요.

그럼 인간의 목적은 뭘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공통된 목적이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행복입니다. 좀 뻔한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우리가 단순히 쾌락이나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이성적 사고와 덕을 실천하며 완전한 성취와 만족을 느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행복을 그는 Eudaimonia(에우다이모니아)라고 칭했습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척 할 때 써먹어 보세요.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이성'입니다. 이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적인 축이자, 그를 그의 선대 철학자들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결정적인 개념입니다. 그는 인간을 다른 동물로부터 구분해주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 이성적 사고를 꼽았습니다. 자연과학을 공부했던 사람답게, 그는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이성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2. 중용

한편 과거 철학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꽤 자주 튀어나오는 단어가 바로 '덕'인데요, 사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다소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덕을 실천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정의, 용기, 절제,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그는 여기에서도 이성적 사고를 강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중간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용기'라는 덕은 비겁함(과도한 두려움)과 무모함(지나치게 적은 두려움) 사이에 존재합니다. '절제'라는 덕은 방탕(과도한 욕망)과 무기력(지나치게 적은 욕망)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말한 '중용'입니다. Mesotes(메소테스)라고 합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척 할 때 써먹어 보세요.

중용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의 판단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즉, 어떤 고정되고 이상적인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 맞는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이게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이성적 사고입니다. 이성을 활용하여 상황을 분석하고,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 각 상황에서의 최선의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지식 뿐만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중용을 찾는 데에 있어서는 실천적 지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3. 실천적 지혜

실천적 지혜는 한 마디로 어떤 상황에서 덕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이성적인 능력입니다. 즉, 상황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죠. Phronesis(프로네시스)라고 부릅니다.

이론적인 지식과는 다르게, 실천적 지혜는 실제 삶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될 수도 있죠.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만 찾으면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현실 세계의 문제들이 단순한 규칙으로 깔끔하게 해결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첫째, 각 문제에는 그것이 속한 고유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 인간이 늘 완벽하게 이성적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순한 경험의 축적만으로는 실천적 지혜를 쌓을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프로네시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경험에 더해 올바른 교육꾸준한 습관 형성이 필요합니다. 훨씬 더 능동적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테스형과의 차이점

마지막으로 지난 레터에서 다뤘던 소크라테스와의 주요한 차이점을 설명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깨닫는 것, 즉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지식을 채워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선한 것인지에 대해 지식을 쌓으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선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했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실제 경험을 더합니다.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없고, 이성적 사고와 경험을 통해 진정한 덕을 실천할 수 있다고 했죠. 즉, '선한 행동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아는 것을 넘어서 실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좋은 삶은 이성을 바탕으로 덕을 실천하며 중용을 유지하는 삶이라는 겁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철학자들의 생각이 으레 그러하듯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입해보면 훨씬 더 선명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좋은 삶을 살고 있나요?

저 역시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린 것은 없고, 그보다는 문제를 둘러싼 맥락에 따라 판단 기준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이 처한 상황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요.

저는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더 와닿았습니다. 저처럼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풋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이런 실수—어디서 보고 들은 건 있어가지고 괜히 아는 척 하는—를 범할 위험이 높습니다. 늘 조심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경험과 습관을 통해 만들어진 나만의 실천적 지혜가 있나요?

새로운 철학자와 함께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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