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그의 불길한 예감
칼 세이건이 말하는 '무지에 대한 찬양'
오랜만에 너무 좋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요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누구나 들어본 책이지만 정작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는 책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이가 무려 700쪽에 달할 뿐 아니라 내용도 그리 쉽지는 않거든요. 저도 사실 흥미로움 반 + 의무감 반으로 읽고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읽으며 느끼는 바가 정말 많은데요, 아직 다 읽지 않았으니 이 책에 대한 글은 나중에 써보도록 하고, 오늘은 제가 최근에 발견한 글을 소개드리려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칼 세이건에 대한 글입니다. Otterletter에 발행된 <그의 불길한 예감>이라는 글이에요.
칼 세이건?
먼저 칼 세이건에 대해 아주 간략히 소개를 드릴게요. 그는 매우 뛰어난 천문학자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칼 세이건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입니다. 왜냐면 뛰어난 천문학자를 넘어,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가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이유는 어렵고 복잡한 과학 지식(그의 경우에는 천문학 지식)을 대중적인 언어로 잘 풀어서 설명할 줄 아는 과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그런 지인이 있다면 아실 텐데, 매우 똑똑해 아는 것이 많은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서로 전혀 다릅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스토리텔러인지는 <코스모스>를 읽어보거나, <그의 불길한 예감>에 공유된 청문회 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됩니다.
그가 던지는 경고
이 글에서 소개된 칼 세이건은 먼저 기후 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칼 세이건이 청문회에서 기후 변화에 대해 역설한 것이 1985년인데, 그 내용이 2023년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경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40년 가까이 기후변화에 대해 똑같은 경고를 듣고 있는 것이죠.
이는 인류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칼 세이건이 수십년 뒤까지도 (과학적으로) 내다볼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칼 세이건의 미래 세대를 향한 경고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또다른 저서인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원제 : The Demon-Haunted World)이 소개됩니다. 1995년, 그러니까 30년 전에 집필된 이 책의 한 대목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이에요:
“나는 나의 아이들이나 손주들 세대의 미국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다. 미국은 서비스와 정보 경제(산업)에 있을 것이고, 주요 제조업의 대부분이 다른 나라로 넘어갔을 것이고, 뛰어난 기술의 힘은 극소수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고, 대중은 자신의 어젠다를 설정하거나 힘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지식에 기반한 의문조차 제기할 능력을 잃게 되고, 점을 치거나 불안한 마음에 별자리를 알아보면서 우리의 비판적 사고능력이 쇠퇴하고, 자신의 기분에 좋은 것과 진실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눈치도 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신과 미개한 시대로 되돌아갈 것 같은 예감이다. 미국인들이 단순해지고(dumbing down, 복잡한 지식과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있음은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콘텐츠가 서서히 쇠퇴하는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30초짜리 (지금은 10초 이하로 줄어들었다) 사운드바이트, 가장 단순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 유사과학과 미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무지에 대한 찬양(celebration of ignorance)이 그렇다.”
여기에서 강조된 “무지에 대한 찬양”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말초적인 미디어 콘텐츠에 의해 점점 멍청해지고 있고(생각없이 인스타 릴스를 연달아 보고 나면 내가 멍청해진 것 같은 기분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이로 인해 “무지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를 잃고, 가짜 뉴스에 쉽게 속고, 복잡다단한 사안에 대해 너무도 쉽게 판단을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원문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사람들은 긴 기사를 읽는 대신 트위터의 140자만으로 자신의 견해를 결정하고 분노했고, TV에 나와서 유사 의학을 퍼뜨리며 유명해진 인물은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펜실베니아에서 출마를 선언한 Mehmet Oz 박사를 말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학자와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는 행동은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지에 대한 찬양(celebration of ignorance)'은 트럼프 임기 4년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표현이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방역과 대응에 미국이 계속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다.”
어떻게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칼 세이건의 경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꾸준히, 제대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 대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켭니다. 쏟아지는 정보에 허우적대며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판단하지 못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너무도 쉽게 판단을 내립니다.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기만의 분명한 가치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관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 소음에 쉽게 휩쓸립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점점 멍청해지는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사회의 책임도 있고 개인의 책임도 있을 텐데요, 개인으로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좋은 글과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고, 건강한 대화를 많이 나눠야겠죠.
정말 많이 반성하는 글이었습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글에서 인용한, 칼 세이건의 또다른 저서 “창백한 푸른점”의 일부를 소개드리며 마치겠습니다. 👋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 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 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