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
셰릴 센드버그의 졸업 축사
메타(페이스북)의 전 COO였던 셰릴 센드버그가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 특히 많이 와닿는 말입니다.
"(...) 로리가 커리어에 대해 굉장히 멋진 비유를 들었는데,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HBS(하버드 비즈니스 스쿨)를 나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 기회를 찾으세요. 성장을 찾으세요. 임팩트를 찾으세요. 미션을 찾으세요. 옆으로 움직이고, 내려 가기도 하고, 시작하기도 하고, 그만 두기도 하세요. 이력을 쌓지 말고 직무 능력을 쌓으세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준 직함을 평가하지 말고, 여러분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세요. 진짜 일을 하세요. 영업 할당량을 받아들이고, 생산 라인에 들어가고, 임시직을 하세요. 계획만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수직 승진 같은 거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여러분 자리에 앉아있었을 때 제 커리어를 짰더라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다 놓쳤을 겁니다."
제가 (특히 인생에서) 명확하게 짜여진 로드맵을 잘 믿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아 한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접해왔습니다. 특히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했는데, 늘 느꼈던 것은 커리어를 포함한 한 사람의 인생은 절대 계획한대로만 되지 않을 뿐더러 일직선도 아니라는 겁니다.
단기적으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따라가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J형 인간 만세).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정도는요. 하지만 정말 길게,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다른 것 같아요.
우리 삶에는 불확실성도 많고 '나'라는 사람도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인생 전체의 계획을 명확하게 정해놓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많이 느껴왔습니다.
몇 살 땐 이거, 그 다음엔 저거, 그 다음엔 그거
옛날부터 "이 나이 때는 오직 이것만 해야 해"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본격적으로 내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대학생 때 삶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좋은 성적, 맹목적으로 빠른 졸업, 맹목적으로 빠른 취업, 이런 것에만 급급한 사람들 말이죠. 그 자체에서 큰 희열이나 재미를 느끼지 않는 이상, 살면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고민, 배움을 모두 제쳐둔 채 명확하게 정해진 로드맵을 착실하게 따라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았어요.
일례로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제가 과거 레터에서 다뤘었는데요, 짧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1학년 1학기 미적분학 시간, 수업이 막 시작되려 하는데 사전에 교수님께 양해를 구한 어떤 중년 아저씨가 강의실에 저벅저벅 들어왔습니다.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는 OO(누구나 아는 전통 대기업)에서 나왔다, 참고로 나 연봉 1억이 넘는다, 그러니까 내 말 믿어도 되겠지?, 자 여러분이 나처럼 좋은 회사 들어와서 성공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철저하게 취업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 아저씨는 함께 들고 온 서류 봉투에서 전단지 뭉치를 꺼내더니 학생들에게 건네줬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회사에서 운영하는 취업 준비 과정의 홍보물이었습니다. 읽어보니 몇 학년 몇 학기에 학점은 몇 이상이어야 하고 자격증은 어떤 게 있어야 하고 어떤 대외활동을 해야 하는지 등 아주 친절한 로드맵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정도 되는 대기업에서 이런 사람이 영업을 하고 다닌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성공이 선착순?
그 아저씨가 했던 말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일단 자신의 연봉 액수로 학생들의 신뢰를 얻으려 한 것이 첫번째 충격이었고요, 대학교에 입학한지 3개월도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런 으름장을 놓는다는 것이 두 번째 충격이었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적인 성공은 선착순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른들, 주변 사람들을 봤을 때 절대 그래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보다는 나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고,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붙잡을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빠르게 성공을 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계획보다 빠르게 어딘가에 도달할 수도 있고, 반대로 계획했던 것보다 더뎌지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제가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 얘기를 늘 마음에 새기고 사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앞으로 쌓아갈,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요? 왜 그런 커리어를 선택했나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