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누가누가 먼저 돌 던지나 대결

섣불리 판단하려는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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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아버지
Sept. 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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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가 흔히 겪는 판단 오류를 하나 소개드리려 합니다. 판단 오류라 함은, 어떤 대상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저지르는 여러가지 판단 오류를 알려줍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려는 본성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지나가는 유치원생도 알 법한 얘기지만, 누군가를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 또는 내가 본 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성 같기도 합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파티에서 조앤이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인상도 좋고 말 붙이기도 편안한 사람이었다. 이제 조앤이란 이름을 들으면, 자선단체 기부를 요청했을 때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조앤은 기부금을 얼마나 낼 것 같은가? '전혀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사교성이 풍부한 사람이 자선단체에 기부도 잘 한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하지만 조앤이 마음에 들고, 조앤을 생각하면 그 여자를 좋아하는 기분이 되살아난다. 게다가 남에게 베푸는 것도 좋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좋다. 이런 연상 작용 탓에 조앤이 남에게 잘 베풀 것이라고 믿을 준비가 된다. 그리고 조앤은 그런 사람이라고 믿자, 조앤이 전보다 더 좋아진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 뼈를 제대로 맞았습니다. 새로 알게된 어떤 사람이 성격도 좋고 인상도 좋다면, 그 사람의 모든 면이 좋게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직접 본 모습은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말이에요. 나머지는 내 머릿속에서 추측과 느낌으로 구성되는 것일 텐데,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의 영향을 받아 전체의 모습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서둘러 결론(판단)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편한대로 생각하기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서둘러 판단을 내려버리려 하는 걸까요?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관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정보가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연결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지적으로 받아들이기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거기에 일관되는 모습으로 나머지 부분 역시 추측해버린다는 것이죠. 대니얼 카너먼 할아버지는 "속단은 효율적이다"라고까지 얘기합니다.

서로 상충되는 논리(또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존재하면 불편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귀여운 강아지를 좋아하는 히틀러의 모습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요.

결론은, 인간은 무척이나 입체적이라는 겁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쌓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추측도 정확해지겠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는 건 매우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의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습니다. 제가 온갖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를 매우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그 대상이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악인'으로 낙인찍어 매장해버립니다. 어쩌면 남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행위의 원천은 불타는 정의감보다는, 그 행위를 통해 느껴지는 마치 내가 정의의 사도가 된 것 같은 기분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 만족감에 대한 희생양은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이고요.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상이 좋다고 해서, 말을 예쁘게 한다고 해서,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면이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결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우리 주변 사람들 모두 크고작은 결점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볼 때 단순히 '좋은 놈 / 나쁜 놈' 또는 '우리 편 / 상대 편'으로 보는 대신, 인간이 무척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존재라는 걸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의식적으로 '판단 보류'를 하려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의 첫인상, 제삼자에 대한 가십, 유명인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 헤드라인 등을 봐도 곧바로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그렇게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생각에 관한 생각>은 얘기합니다.)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특정 사람 또는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저 제가 인지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기 위한 것일 테니까요. 평가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됩니다. 아예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특히나 누군가를 욕하는 건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설령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새끼라고 해도, 누가누가 먼저 돌 던지나 대회가 열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내가 가진 양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이 있나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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