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비결
절대 진리는 없다
오늘은 저의 인생책 중 하나인 <사피엔스>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저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준 부분이기도 해요.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종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공통의 신화’ 덕분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말합니다. 다른 동물 종과 비교했을 때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은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서요.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원숭이를 설득하여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갖게 될 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하죠.
우리는 허구를 말하는 능력 덕분에 더욱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도, 종교도, 이념도, 법도, 기업도, 스포츠도, 모든 것이 다 ‘공통의 신화’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그저 다같이 ‘이건 이렇다고 믿자’라고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것들이 사회에서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죠. 자연에는 국가도 종교도 이념도 없습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들이 믿는 가장 대표적인 신화는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며 국가의 의사결정은 모든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화’를 집단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 신화를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신화를 만들어내 집단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고요.
일례로 저자는 책에서 '리비아의 인권 문제에 대한 UN의 입장'을 언급하며, 사실은 리비아도 인권도 UN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들—그러니까 국가, 인간의 권리, 국제 기구—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죠.
결국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믿을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장치(=시스템) 덕분에 우리 인류는 이 행성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협력의 본질은 같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신화를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면, 그리고 그것이 마치 민주주의처럼 명료하면 협력은 효과적으로 이뤄집니다. 그것을 시스템으로 만들어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 그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정당화됩니다. 이 특성이 파멸적으로 발현된 예시이긴 하지만, 나치가 전세계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 역시 히틀러라는 인물이 민족적 우월성이라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끊임없이, 명료하게 전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세뇌하듯 말이죠.
그래서 어쩌라고?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주는 시사점은 뭘까요?
바로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는 제 해석입니다). 우리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밖에 없을 텐데, 애초에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 진리라고는 아마 자연을 구성하는 과학 법칙밖에 없을 겁니다. 민주주의도, 법도, 인권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죠.
어디에 신고하실까봐 덧붙이면, 당연히 제가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해볼 수도 있어요. 아주 먼 미래에는 아예 새로운 이념이 탄생하여 그걸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 수도 있습니다. 히틀러와 같은 미친놈이 세상을 지배하여, 한 인간의 권리는 그의 뿌리에 따라 다르다는 이념을 전세계에 심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국가의 개념 역시 모호해질 수도 있고요.
너무 극단적인,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얘기같나요?
1776년 7월 4일은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탄생한 날입니다. 바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미국이 독립 선언을 한 날입니다(실제 독립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쟁취했다고 하네요). 이 독립 선언문을 작성하고 서명한 사람들은 미국인들의 자유를 주장한 인물들이며, 미국의 초기 대통령들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Founding Fathers라고 칭하며 영웅시하죠.
그런데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사람 중 많은 이가 흑인 노예 소유주였다고 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얘기해요.
"이들은 서명과 동시에 노예를 해방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는 깜둥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이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지금 우리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래에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이 사회는 호모 사피엔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일 뿐, 그 어느 것도 자연적으로 당연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그 근거를 찾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정답이라고 주어진 것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흑인 노예제를 지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변하게 된 믿음이 있나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