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제가 억만장자가 되어 보니까요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
오늘 레터에서는 최근에 인상깊게 읽은 글을 공유드리려고 합니다. Basecamp라는 유명한 B2B SaaS 기업의 공동창업자인 데이빗 한손(David Hansson)의 에세이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억만장자가 된 건 아닙니다.
어느 날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Basecamp의 지분을 일부 매입하며, 데이빗 한손은 하루 아침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꿈꿔오던 부자가 된 것이죠. 이 에세이는 그 이후 그가 부와 행복에 대해 깨달은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원제는 <The day I became a millionaire>이고, 아래 글은 제가 번역한 내용입니다. 번역의 퀄리티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핵심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편집/의역이 있습니다.
(여기부터 번역)
저는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에서 잘 해봐야 중산층 정도인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국가들이 잘 살지는 않지만, 복지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진 덴마크는 최선을 다해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했습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빈털터리였다가 부자가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냈다며 마치 그 주인공을 영웅처럼 묘사하는 이야기를 혐오합니다. 제가 지금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지원하는 다양한 복지(출산 휴가, 보육 시스템, 건강 보험, 교육 등)를 받은 덕분입니다. 저는 어릴 때 주택 조합에서 제공하는 저가 주택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는 악착같이 생계를 꾸려나갈 줄 아는 분이었고 제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마술사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한, 삶의 질은 물질적 성공에 크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 풍족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는 충분히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둘째, 황금빛 울타리의 반대편을 보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직접 부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첫 번째 교훈의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게요.
어릴 때 형과 저는 "백만 크로네*가 생기면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해대곤 했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사는 상상만으로 하루를 종일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이었죠. 코모도어64**를 사기 위해 1년 내내 저축할 필요가 없다고? 매년 해외로 여행을 갈 수도 있다고? 아니 잠깐… 가족이 다 함께 탈 수 있는 차를 살 수도 있겠는데?
*덴마크의 화폐 단위
*Commodore 64, 1982년에 출시된 8비트 가정용 컴퓨터
이렇게 군침 나오는 상상의 기본 전제는, 우리가 매주 받는 용돈의 제약으로부터만 벗어날 수 있다면 삶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모든 게 완벽할 텐데..
나이가 들면서도 형이랑 했던 이 놀이는 항상 제 마음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았죠. 어떤 물질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이 귀찮거나 힘들었다는 건 아닙니다. 덴마크에서 태어났다는 행운 덕분에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생활은 가능했고, 주변 인맥을 통해 해적판 소프트웨어 CD를 팔면 꽤 짭짤하게 벌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항상 더 많은 것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지면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미가1200*을 원하다가, 그것을 갖고 나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아미가4000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달려도 이 현실은 그 아래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Amiga 1200: 1992년에 출시된 가정용 컴퓨터
일이 벌어진 건 2006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공동창업한 Basecamp에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관심을 보였고, 제이슨*과 저는 각각 수백만 달러**에 회사 지분의 아주 일부를 매각했습니다. (Basecamp는 처음부터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 투자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와! 억만장자가 된 겁니다!
*Jason Fried, Basecamp 공동창업자
**수십억 원 정도
그날까지 몇 주 동안 제 은행 계좌의 숫자가 급격히 불어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토록 바라던 꿈의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억만장자가 되면 얼마나, 진짜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까요. 갖고 싶었던 컴퓨터와 카메라, 원하는 차를 모두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제가 꿈꿔온 이러한 삶의 또다른 중요한 부분은 앞으로 다시는 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저에게 주어진 이 영원한 휴가가, 제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실존적 행복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죠.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해봤습니다: 주식과 채권을 적절히 섞어 투자를 해두면,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네?
그토록 바라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을 때 느낀 행복감은 그날 하루 종일 지속되었습니다. 적어도 남은 일주일 동안은 속으로 활짝 웃고 다녔죠.
하지만 이내 제 마음 속에 생겨난 것은 신앙의 위기*였습니다. 이게 끝인가? 내 주변 세상이 왜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 지금 이게 맞나?
*종교인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는 현상
오해하지 마세요, 식당에서 메뉴 가격을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물론 지금도 자연스레 보기는 합니다). 다만 마치 과대포장된 영화처럼, 마침내 그것을 직접 보고 난 뒤에 느껴지는 실망감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실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어떤 것을 가졌는지(결과)가 아니라 내가 가진 기대 수준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돈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물론 대형 스크린 TV와 제가 다 보지도 못할 것 같은 양의 DVD를 사긴 했지만, 이것들이 억만장자가 되기 전이라고 해서 살 수 없는 것들은 아니었죠.
그해 연말이 되어서야 마침내 크게 하나 질렀습니다: 노란색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는 매우 멋지고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저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에게 깊은 만족감을 줬던 것들은 코딩을 하고, Basecamp 제품을 발전시키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때 부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즐겨왔던 라이프스타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몰입과 내면의 평온함이 행복의 진짜 원천이라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깨달았어요. 마치 억만장자라는 꿈의 장막을 드디어 걷어냈는데,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제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충격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지만, 사실 궁극적으로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것들은 제가 잃을까봐 걱정해야 할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큰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저는 가진 현금을 잃어도 처음에 시작한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코펜하겐의 12평짜리 아파트에서요. 제 관심사와 호기심은 그대로입니다. 제 열정도 여전하고요. 저는 선진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높은 생활 수준과 낮은 생활 수준을 모두 겪어봤는데, 양쪽 모두 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즐거웠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한 가지 재밌는 건, 제가 억만장자가 되기 전에도 부자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는 겁니다. 꼭 직접 말해주지 않더라도 여러 인용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얘기를 해줬죠.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당신이야 이미 부자가 됐으니까 속 편한 얘기를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반응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얻은 교훈입니다. 은행 계좌에 찍혀있는 숫자나 TV의 크기, 차고에 있는 자동차의 제조사나 사는 집이 바뀐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해결해야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엄청난 특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에 든 적도 없고, 살면서 총에 맞을까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종착점이 최저 임금을 받는 종업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요. 덴마크에서의 삶은 기본적인 안전과 안정감이 보장된 삶이었고,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그러한 어려움을 알고 있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겪은 경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삶의 기본적인 것은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보물을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공유드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진실성, 존엄성, 심지어 인간성까지 포기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주변 환경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합니다. 억만장자가 되어도 그 짜릿함은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부자만 되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구원이 사실은 거기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 유혹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 거예요.
"삶에서 1순위로 소중한 것들은 전부 공짜다. 2순위로 중요한 것들은 매우, 매우 비싸다."
- 코코 샤넬
위의 인용문에 동의하지만, 여기에 1순위 2순위의 차이는 2순위와 20순위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 등수는 선형적이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것이 충족되고 나면, 이 세상에는 삶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최고의 것들을 찾았거나 적어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스스로 알고 있든 모르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세요.
(끝)
우리는 돈이 종착점인 것이라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지만, 막상 가고 보니 그곳이 종착점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저도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무언가를 마치 인생의 유일한 목표인 것 마냥 끈질기게 좇았는데 막상 갖고 나니 그게 답이 아니라는 상상을 하면 허탈하고 심지어 오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럼 우리는 삶에서 뭘 추구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