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무엇이든 그 마지막을 알 수만 있다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오늘은 제가 최근에 했던 생각을 공유드리려고 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일 거예요. 레터 마지막에는 앞으로 어디 가서 아는 척 할 수 있는 (하지만 더 깊이 물어보면 자리를 피해야 하는) 지식도 살짝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언제든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슬프고 심지어는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마지막, 진짜 영원히 마지막은 있는데 우린 그걸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 삶은 많은 부분에서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지난번에 다녀온 그 해외 여행이 내 평생 그 나라의 마지막 방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9년 전 다녀온 터키 이스탄불의 한 골목에 있던 허름한 고등어케밥 식당을 제가 다시 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가장 최근에 좋아하는 사람한테 떨리는 마음으로 표현한 내 마음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하는 마지막 고백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와의 멋쩍은 인사가 평생 그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죠. 어릴 때 마지막으로 놀이터에서 놀아본 것이 언제인가요? 마지막으로 밤 새워 공부해 본 적이 언제인가요? 기억이 나시나요?
아무튼 우리 삶에는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
이 당연한 사실을 처음 느낀 건 제가 스무살 때, 그러니까 10년 정도 전이었습니다.
저는 열 세살 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매일 현지인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받았습니다. 특히 제가 있던 기숙사는 학생이 1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기숙사였어서 선생님들과 학생들 사이가 유독 끈끈했습니다. 또 매일 얼굴을 보았으니, 그들은 저에게 필리핀 가족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 간의 생활을 마친 후, 정이 들대로 든 선생님들과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며 내가 성인이 되면 꼭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당연히 진심이었습니다.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제 삶에 훨씬 중요한 문제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생활과 입시, 대학 생활, 꿈 등이 큰 자리를 차지하며 그들은 제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그 가족같던 사람들이 말이에요.
20대 초반 어느 날에 그들이 문득 떠올랐을 때는 이미 연락하기에 늦고 말았습니다. 선생님들의 얼굴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었지만, 그 외에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성을 뺀 이름(first name) 뿐이었는데 그 이름마저도 Dianne, Marian, Dennis, Jeff, Katherine, Renante, Mike 등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며칠 찾아보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러니까 17년 전의 작별인사가 그들과 하는 마지막 대화이자 마지막 눈빛 교환이자 마지막 포옹이었고, 매우 높은 확률로 앞으로 제 삶에서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때의 저는 그것이 내 평생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또 하나는 벌써 1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저희 아버지의 지인 얘기입니다. 아버지와 동년배였던 그 아저씨는 어느 주말에 등산을 나가시면서 가족에게 “갔다 올게”라며 지극히 일상적인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산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저씨와 남겨진 가족은, 그날 오전에 나눴던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될 거라는 상상을 눈곱만큼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내가 하는 무언가가 내 평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입니다. 그 원인은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우리 삶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은 대개 예측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쉽고 슬프고 심지어 섬뜩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회피하기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매번 이런 생각만 하고 살면 삶이 피곤해질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을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어야 매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인사마저도요.
Memento Mori
고대 사람들은 “Memento mori”라는 말로 이것을 표현했습니다. 직역하면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이 말이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매 순간(현재)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 다른 하나는 역시 무엇이든 그 끝이 오기 마련이니, 마지막 순간이 오면 집착하지 말고 떠나보내라는 것.
또 하나. 16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Allegory)”라는 화풍이 유행했습니다. 이 화풍의 정물화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하나는 생명, 빛, 시간, 아름다움, 명예 등 우리가 평소 소중히 여기고 집착하는 것들입니다.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것들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두개골입니다.
그러니까 생명, 시간, 아름다움, 명예 등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유한하지 않으니 늘 그 끝(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