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생각이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개인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세상이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더 빨라야 하고 더 많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고 모든 것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현재 선택한 방식은, 우리 역시 그에 발맞춰 빨라지는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세상이 빠르니 너도 나도 그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으려 하고, 그러니 세상은 더욱더 빨라집니다. 전 약간 멀미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거대한 광장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이 온통 혼비백산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일단 뛰고 볼 겁니다. 무서우니까요. 점점 더 빨리 뛰면서 한 명이라도 더 제치려고 할 겁니다. 불안하니까요. 대체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지, 아니 애초에 뛰긴 해야 하는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숙고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조급하니까요.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조급해지고 불안하면 우리는 생존 모드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 모드에서 장기적이고 깊은 사고를 하지 못합니다. 당장의 생존이 급급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만성적인 단기적 사고에 빠져있습니다. 우리는 만성적인 조급함과 불안에 빠져있습니다.


*출처: Statista / 단위: 제타바이트


📱 소셜 미디어

삶의 많은 부분이 빠르고 많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잠시 빈 공간이 생겼을 때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마치 말 많은 사람이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그 정적에서 불안과 공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 얕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그 시간을 메우려고 합니다.

릴스와 숏츠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시나요? 저는 가끔 인스타그램 릴스를 무한 스크롤할 때의 제 멍청한 얼굴을 누군가가 찍어서 저에게 보여주는 상상을 한답니다.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요?


아무튼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는 여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세상을 지나치게 투명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화려하게(화려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투명해진 덕에, 이제 우리 곁에는 인스타그램의 회원 수만큼이나 비교의 대상이 많아졌습니다. 세상이 투명해졌으니 모두가 자신의 화려한 모습만 전시합니다.


바로 얼마 전 작고하신 찰리 멍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은 욕심이 아니라 질투에 의해 돌아간다고요.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화려한 모습과 나의 일상적인 모습을 비교하게 됩니다. 내가 초라해 보이니 나도 화려한 모습을 전시하고 싶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내 삶을 구성하는 것들의 기준이 내 안에 있지 않고 저 멀리 바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 더 행복한 삶?

잠깐, 더 행복한 삶이라고요?


내가 정의하는 ‘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삶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충분히 깊이, 오랫동안, 꾸준히 고민해 보셨나요?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하는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나요? 지금 내가 지향하는 삶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맞나요?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가요? 지구에 사는 인간의 수만큼이나 행복의 정의와 형태는 다를 텐데,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지나친 소셜 미디어가 해롭다는 걸 너도나도(저도) 아는데, 앞서 말한 이유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인스타에 들어갑니다. 심심해서, 불안해서, 머리가 복잡해서, 궁금해서. 도저히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려야 가져올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도저히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한편 생각이 깊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질문을 던지며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또 세 번, 네 번 던지며 새로운 관점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느립니다. 깊은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아무런 질문 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생각은 얕기만 할 뿐입니다. 쉽게 반박당하고 쉽게 휩쓸립니다. 내 안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생각이니까요. 



🏫 보다 근본적인 원인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해 논하자면 여러 교육 철학자의 이름을 대야 할 테지만, 제가(휴튼이) 생각하는 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이 사회에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12년의 교육을 통해, 또 대학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는 법,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법, 나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법, 나만의 가치관을 세우는 법, 그리고 삶의 주요한 선택에 대한 나만의 판단 기준을 갖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훈련을 받았던가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치며 받는 교육을 통해,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과 더불어 추후 더 나은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기계적인 훈련을 받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보다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취업 교육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저 늘 남보다 빨리 익혀야 하고 늘 남보다 많이 외워야 했습니다. 저의 직간접적인 경험에 따르면 우리 교육은 사실상 그게 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자 삶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느립니다. 깊은 생각을 요구하니까요. 우리 교육이 하듯이 줄 세워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나만의 정답을 찾는데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요.


속도와 양에 삶을 희생시키기에는 내 삶이 너무 소중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없이는 생각이 깊어질 수 없으니까요. 


🫣 냉소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슬픈 사실은 우리가 냉소주의자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진지한 얘기를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소는 깊이 생각하길 거부하는 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성찰, 노력, 사랑, 희망, 의미, 가치, 그 대상이 무엇이든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비웃으면 끝이니까요. 얼마나 간단한가요? 냉소는 쉬운 길입니다.


고등학생 시절의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중 한 명인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냉소는 겁쟁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했습니다.

또 <인간 본성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냉소주의자들이 마치 그것이 쿨하고 멋진 것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심드렁하고 조소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서 자신은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보이려고 하죠.

하지만 냉소주의의 진짜 실체는 유치한 두려움입니다.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 그랬다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로버트 그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한 냉소주의는 “순전히 나태함에서 비롯되며, 냉소주의를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위로를 제공”합니다.


휴튼은 냉소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 퍼즐 조각 맞추기

깊은 생각을 한다는 건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 맞추는 과정입니다. 하나씩 맞춰가며 나 자신에 대한 크고 상세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성찰의 과정입니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씩 바뀔 수도 있고, 그림의 크기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모두 내가 성장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오직 속도와 양이 최선의 가치로 숭배받는 세상에서는 마치 퍼즐 조각 많이 모으기 경진대회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이게 내 퍼즐 조각인지 누구의 퍼즐 조각인지 모르지만 일단 모으고 보는 겁니다. 하나하나 맞춰볼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무작정 많이 그리고 빨리 모으기만 하는 겁니다. 그걸 모두 짜 맞추면 무엇이 나올까요?


휴튼은 퍼즐을 맞추는 곳입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찾는 곳입니다. 마치 과학자가 깊은 우주 속 미지의 영역을 밝혀내듯, 나에게서 보지 못했던 영역을 탐험하는 곳입니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정말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휴튼은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 기술 + 철학 = ?

휴튼은 오직 좋은 질문을 통한 성찰만이 진정한 생각의 깊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고대 그리스 아고라에서 젊은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나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 할 수도 있지만(즉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만), 나를 잘 아는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으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AI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며, 우리는 이것이 모두에게—말 그대로 의지만 있다면 그 누구든—가능한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휴튼은 AI가 던지는 나만의 맞춤형 질문에 대해 혼자 사색에 잠기며 기록을 하는 공간입니다.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엿볼 수도 있고, 아예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휴튼은 깊은 생각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기술과 철학을 결합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자아 탐구를 돕는 것, 이것이 바로 깊은 생각이 사라져 가는 이 세상에 휴튼이 존재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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