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주의할 점
성찰과 반추의 차이
제 삶의 큰 행복 중 하나는 선선한 밤에 제가 좋아하는 곡을 무한 반복하며 산책을 하는 것입니다. 최근 며칠도 가볍게 산책만 하려고 했는데 데이식스의 신곡을 들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보니 한시간 반이 넘게 걸은 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워낙 잡생각이 많은 편이라 산책을 하면서 생각이 흘러가는대로 놔둡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발산시키다 보면 문득 하나가 손에 잡힙니다. 그럼 거기에 깊이 빠져들기도 하고요. 또 다시 흘러가는대로 놔두기도 합니다. S는 전혀 공감 못하시겠죠?
제가 밤산책을 하며 하는 생각은 보통 제가 요즘 아끼는 몇몇 사람들에 대한 생각, 제 미래 계획에 대한 생각, 지나온 과거에 대한 생각 등입니다. 또 그중에서는 긍정적인 생각도 있고 비관적인 생각도 있고 열정이 불타오르는 생각도 있고 답답한 생각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우리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생각을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사고 패턴'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고 해요. 여기서 말하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이란, 정신건강의학에서 '반추(rumination)'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저도 종종 빠지는 함정이었습니다.
생각의 되새김질
반추는 과거에 경험한 부정적인 감정, 생각, 사건 등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정신적 습관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 생각의 방향이 생산적이지 않고 그저 부정적 감정에 머물러있기만 하는 것이 반추의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그 상황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리플레이하는 것, 또는 내가 과거에 했던 후회되는 행동을 곱씹으며 자책만 반복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됩니다.
반추는 보통 비자발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고 해요. 즉, 우리가 생각의 운전대를 놓고 있으면 저절로 '반추'라는 방향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과거의 나쁜 경험을 떠올리고, 그걸 계속 되새기면서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 새끼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와 같은 소모적인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던지는 식이죠.
반추가 반복되면 (당연히) 우울감, 스트레스, 불안 장애 등을 유발합니다. 특히, 반추는 우울증의 발생과 지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요.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고 ➡️ 부정적인 감정을 악화시키고 ➡️ 문제 해결 능력을 저하시키고 ➡️ 더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고 ➡️ 부정적인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고 ➡️ ... 의 악순환이 반복되며 우울한 상태를 지속시키거나 심화시킨다는 것이죠.
왜 반추는 자동으로 일어날까
저는 반추라는 행위가 비자발적이고 자동적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생각을 가만히 놔두면 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지?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예상치 못했던 것 하나를 소개드립니다.
*반추의 원인은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루기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가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매듭짓겠습니다.
바로 '비극의 주인공 신드롬' 또는 '피해자 심리(Victim Mentality)'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을 과장해서 받아들여 스스로 자기연민을 촉진하는 심리 현상으로,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이 경향성이 심해질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고통의 주인공으로 설정하려 합니다.
이 심리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 역시 복잡하고 다양한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살짝 찔렸습니다.
1. 심리적 방어 기제 (자기연민) : 나에게 벌어진 문제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전략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기연민을 통해 나 자신을 스스로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고,내가 받는 고통을 확대하여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나를 이 상황의 극적인 피해자로 두면서 불안이나 죄책감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같은 사고방식이 이 신드롬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자기연민은 종종 자신의 고통이나 불행을 타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더 크고 중요하게 느끼려는 시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2. 관심 : 우리는 타인의 관심, 공감, 위로와 같은 사회적 보상을 얻기 위해 내가 가진 고통을 과장하거나 강조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관심을 받으면 마치 내가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죠.
3. 낮은 자존감 :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여김으로써 내가 처한 상황과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해요. 이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하는 경향입니다.
4. 학습된 무기력 : 반복해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믿음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이것이 '내가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5. 등등..
만약 무의식적으로 반추를 하게 된다면, 내가 지금 비극적 주인공 신드롬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반추 극복하기
그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할까요?
반추의 대표적인 반대 개념으로는 '성찰(self-reflection)'이 있습니다. 성찰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개선하기 위한 의도적인 사고 과정입니다. 마치 늪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푹 빠져있는 대신, 문제나 경험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감정, 행동, 결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이죠. 가능하다면 문제의 해결책을 찾거나, 최소한 성장하고 배우려는 의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찰은 그 결과가 대체로 긍정적이거나 건설적입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반추와 성찰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목표 지향성'에 있습니다.
반추는 목표가 없습니다. 소가 한번 삼킨 여물을 다시 되새김질 하듯(반추의 실제 어원!), 더 나아진다는 방향성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 뿐입니다. 반대로 성찰을 할 때는 이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상황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그때 문제의 원인이 뭐였지?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음번에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볼 수 있을까?' 등의 사고 흐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은 미래 지향적입니다.
근데 성찰보다 중요한 건 먼저 내가 반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비생산적인 생각에 빠져있네?'를 알아차리면, 곧바로 중단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이렇게 알아차린 뒤에는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이걸 두고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 통제할 수 없는 것, 부정적 감정에서 빠져나와 바로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촉감, 호흡,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등에 집중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마음챙김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반추를 하고 있다면, 생각을 최대한 멈추고 지금 호흡에 집중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반추는 비자발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호흡에 집중하다가 어느새 또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내가 지금 반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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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가 자주 실천하는 방법을 소개드리면서 레터를 마치겠습니다. 바로 위에 소개드린 마음챙김과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방법입니다. 의학적/심리학적 근거 따위 없고 그냥 경험적으로 얻은 해결책입니다.
저는 간혹 제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머물러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곧바로 저 자신에게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꽤 쉽게 빠져나와 더 생산적인 고민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길!
다음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