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이유
지금 추구하는 진로 방향은 언제 정했나요?
저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내가 추구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이런 것들을 늘 생각해야 하죠.
얼마 전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Think Again)>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애덤 그랜트는 <오리지널스>라는 책으로 특히 유명한,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교수님입니다. 아마 들어본 분도 많으실 거예요. <싱크 어게인>의 핵심 골자는 우리가 아는 것, 믿는 것, 당연히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다시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좀 두꺼운 책이지만 굉장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애덤 그랜트는 삶에서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터널 시야
삶에서의 명확한 목표를 가지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이유는 바로 터널 시야(tunnel vision) 때문입니다. 터널 시야에 빠지면 우리는 당장 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합니다. 어떤 목표와 계획을 정하고 나면, 그 계획 이외의 다른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을 못보게 되는 것이죠.
시간이 흐르며 나도 바뀌고 환경도 바뀝니다. 내가 원하는 것, 추구하는 것이 바뀔 수 있죠. 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하나의 목표에만 맹목적으로 매진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애덤 그랜트는 책에서 ‘몰입 상승’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계획을 전심전력을 다해서 밀어붙이지만 일이 기대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대개 그 계획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층 더 많은 노력과 자원을 쏟아붓는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한번 정한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매몰비용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그게 아까워서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덤 그랜트는 더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몰입상승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자아를 진정시키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보호하며, 과거에 자신에 내린 결정이 옳았음을 인정받는 방편으로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끊임없이 자기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투지’라는 것이 매우 숭고한 가치로 추앙받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의 추진력으로 손꼽히는 투지가 몰입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해요. 투지가 잘못 발휘되면 요행수를 노리거나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일을 무작정 밀어붙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정체성 유실
책에는 정체성 유실(identity foreclosure)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폭넓은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특정한 자아의식에만 안주한 나머지, 대안이 될 수 있는 다른 자아에는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죠. 즉, 간단히 말해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해야겠다’가 너무 일찍 정해져버려 그보다 훨씬 좋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놓치게 되는 함정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이들, 또는 좋은 학교/전공에 들어간 학생들이 많이 겪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민을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거든요. 내가 잘하는 것, 내 앞에 펼쳐진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적습니다.
물론 이는 자칫 먼 시간이 흐른 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애덤 그랜트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지나간 2년 동안에 이룬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다음 20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로 선택에서의 정체성 유실, 즉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선택지가 좁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공통적으로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바로 “너는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할 때라고 하는데요. 이 질문에 대해 미셸 오바마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요.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정말 쓸모없는 질문이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다 컸을 때 뭐가 되고 싶은데? 이런 질문은 성장이 유한한 것처럼 말한다. 마치 미래의 어떤 시점에 도달하면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그리고 그걸로 모든 게 끝인 것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이와 함께, 애덤 그랜트는 본인이 위와 같은 질문을 싫어하는 또다른 이유를 얘기합니다. 바로 그 질문을 듣는 사람의 생각이 ‘직업’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저런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그 대답으로 특정 직업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의사, 선생님, 기업가처럼요.
하지만 한 개인을 직업으로 규정할 수 있나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저자가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건 직업에 국한되어 있죠. 그러면서 저자는 “그러므로 좋은 아버지, 혹은 좋은 어머니가 되겠다는 말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저 직업의 안정성을 바란다거나 인정 많고 호기심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덤 그랜트는 하나의 직업을 고르고 그게 마치 일생의 목표인 양 매진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정확히는, 필요할 때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기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포기를 부추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주기적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가치관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는 외부적인 요인이 변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업데이트하라는 겁니다.
애덤 그랜트가 추천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1년에 두 번,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 날짜를 미리 달력에 표시해둡니다. 그 질문은 예를 들어 이런 것들입니다. 1년에 두 번씩,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방향성을 업데이트하라는 것입니다.
1. “나는 지금 추구하는 진로 방향을 언제 정했고, 그때 이후로 나는 어떻게 변했나?”
2. “내가 하고자 하는 역할이나 직장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나?”
3. “지금이 그 판단을 수정해야 할 시점은 아닌가?”
이와 관련되어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추구하는 진로 방향을 언제 정했고, 그때 이후로 나는 어떻게 변했나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과 다르다. 자신의 이상적인 직업이 아직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과거의 산업은 변하고 있으며 새로운 산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구글이나 우버, 인스타그램이 생긴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당신의 미래 자아는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며, 당신의 관심사는 나중에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