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1 - 소크라테스

최근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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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아버지
2024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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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휴튼 레터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휴튼 레터는 항상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드리고자 했습니다. 가끔은 샛길로 빠지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폭넓은 관점과 사례들을 공유드리려고 했어요.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시리즈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고대 때부터 내려온 질문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자기만의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이 정도면 사색과 성찰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고대 때부터 시작하여 각 시대의 철학자들이 이야기했던 '좋은 삶'을 다뤄 보려고 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한 주에 하나씩 소개드릴게요.

그 시작은 소크라테스입니다.
*이 시리즈는 제가 이전에 종종 소개드린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먼 옛날, 아테네의 한 마을

기원전 469년경 그리스 아테네의 한 마을, 한 석공과 산파 사이에서 귀여운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의 이름은 테스형 아니 소크라테스.

그의 생애 동안 아테네는 페리클레스라는 지도자 아래에서 문화적 황금기를 누렸는데요, 우리가 아는 파르테논 신전도 이때 세워졌고,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정치의 시작도 이 시기였다고 합니다. 무려 2,500년 전이라니 놀랍습니다.

하지만 아테네가 번영만을 누린 건 아니었습니다. 아마 어디에선가 얼핏 들어보셨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무려 30년 동안 이어졌고요,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크게 패배하고 큰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정을 겪게 됩니다.

혼란과 방황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혼돈의 시기에 아테네의 많은 시민들이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대해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소크라테스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간 존재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탐구를 펼쳐나갔죠.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아마 테스형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문장일 겁니다. 얼핏 간단하고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은 사실 꽤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좋은 삶이란 내 내면을 끊임없이 탐구하여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이해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지혜를 바탕으로 덕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잘게 쪼개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그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실제로 그는 "진정한 지혜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마치 아는 것처럼 넘겨짚고 있나요? 우리는 종종 직접 해보지 않은 것도 대략 어림짐작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안의 단면만 보고 전체 맥락을 이해했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경향은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라면서요. 아닙니다. 제가 얼마 먹지 않은 나이를 우걱우걱 먹어가며 느끼는 건, 내 세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나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성찰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까지 얘기했습니다. 좀 빡세네요. 즉, 그가 말한 좋은 삶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믿음과 가치관을 검토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사회의 관습을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눠 자신의 믿음, 가치관, 행동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근데 성찰이 중요한 건 알아도 숨 쉬듯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이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럼 소크라테스는 어떤 방식으로 성찰을 했을까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입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이렇게 훈련시켰습니다. 👉 먼저 상대방의 의견이나 주장을 묻는 질문을 합니다. 상대방이 답을 하면, 그것에 대한 반례를 들어 반대의 관점을 제공합니다. 그 후 상대방의 이어지는 답변에서 모순을 지적하고, 그가 가진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여 궁극적으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도록 돕습니다. (아마 친구는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돈 많은 삶이 좋은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돈 많이 벌어서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를 묻죠. 이렇게 자꾸 물어서 궁극적으로는 질문을 받은 이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나 자신을 알아서 뭘 할까요? 소크라테스는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단어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덕은 대표적으로 지혜, 용기, 절제, 정의 등이 있습니다. 그는 이것들이 잘 조화된 삶이 '좋은 삶'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즉,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지혜), 위험이나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용기),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절제), 개인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행동하는 능력(정의)을 말합니다.

사실 얼핏 들으면 그냥 뻔하고 지루한 얘기인데요, 물질적인/자극적인/단기적인 것들이 신격화되어 추앙받는 지금 시대에 지나치게 경시되는 가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러한 가치들을 냉소하고 있지는 않나요?


결론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하여 내가 가진 기본적인 믿음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검토하여 더 나은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과정을 반복하여 지혜를 쌓고 덕을 실천하는 삶이 테스형이 말하는 '좋은 삶'이죠.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사실 전혀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좋은 삶을 살고 있나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깊은 철학을 한 편의 글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이 턱없이 짧기도 하고요. 다만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얘기했고,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소크라테스는 '신성 모독''젊은이들의 타락'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에 서게 됩니다. 그는 "나의 임무는 여러분의 영혼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검토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죽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최근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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