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내가 투자 천재라는 걸 깨달은 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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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튼 아버지
2023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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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레터에서 한번 소개드리기도 했고 제가 최근 인상깊게 읽기도 한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의 일부를 소개드리려 합니다.

사실 이 책으로부터는 배울점이 너무나도 많아서(무려 700쪽!) 몇 달 동안은 이 책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하면 모두 휴튼을 떠나버리실 것 같으니 조금 간추려서 정리해드릴게요.


구글의 성공 신화?

이번 레터에서는 제 의견보다는 책 내용을 그대로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책의 중반에는 '서사 오류'라는 개념이 소개되며, 구글의 성공 신화와 관련된 부분이 나와요.

"설득력 있는 서사는 불가피성이라는 착각을 키운다. 구글이 어떻게 정보 통신 업계에서 거대 기업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보자.

스탠퍼드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창의적인 대학원생 둘이 인터넷 정보 검색의 획기적인 방법을 알아낸다. 이들은 회사를 차릴 궁리를 하며 자금을 모으고 몇 가지 결단을 내리는데, 모두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들이 세운 회사는 불과 몇 년 만에 미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주가가 치솟고, 두 사람은 지구상에서 최고 부자가 된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글 이야기를 이해했고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대체로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사건 설명의 타당성을 시험하는 방법은 그 사건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구글의 믿기 힘든 성공 이야기 중에 어느 것도 그 시험을 통과하기 힘들다.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무수한 사건을 포함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설명하는 데 서툴다.

중요한 결정이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진 탓에 거의 완벽한 혜안이 발휘된 것만 같지만, 불운이 끼어들었다면 성공의 여러 단계 중 어느 하나를 망쳤을 수도 있다.

(...) 물론 구글 신화에는 실력도 크게 작용했지만, 운도 그 신화에 거론되는 수준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운이 많이 개입했을수록 그 신화에서 배울점은 적어진다.

여기서 작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막강한 원리다. 가지고 있는 제한된 정보를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받아들이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정보로 최상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가 괜찮다 싶으면 믿어버린다. 모순적이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을 때, 그림을 맞출 조 각이 적을 때, 오히려 조리있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더 쉽다.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편안한 확신은 자신의 무지를 외면하는 무한에 가까운 능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보이는 정보만을 짜맞춘다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판단할 때 당장 눈 앞에 있는 정보만을 조리있게 짜맞춰서 이해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정보가 얼마나 타당한지, 얼마나 설득력있는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그것들을 짜맞춘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면 그냥 믿어버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구글의 성공과 같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돌아보며 '이해'했다고 착각합니다. 아, 이 회사는 이러이러한 비결 덕분에 성공했구나,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스토리는 우리 눈 앞에 주어진 정보를 짜맞춘 것일 뿐, 실제 구글의 성공을 이끈 요인은 훨씬 다양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엔 운 역시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죠.

세상을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건 이 자체로도 문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를 유발합니다. 바로 우리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위기가 닥치기 훨씬 전부터 알았다'고 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 문장에는 중요한 사건을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하는 대단히 부적절한 단어가 들어 있다. 그렇다, "알았다(knew)"라는 단어다.

위기가 닥치리라고 미리 짐작한 사람이라도 그 사실을 알았을 수는 없다. 그들은 위기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이유로, 이제와서 그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개념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기존에 알려진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을 때라야 '안다'라는 말을 쓴다.

(...) 이런 맥락에서 '안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의 고약한 점은 자격도 없는 사람이 선견지명이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에는 세상을 실제보다 더 인지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영원히 치명적인 착각에 빠질 수 있는 발상이다."


한번씩 나의 예측이 맞아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얘기를 드리자면 저는 학생 때 처음 주식을 배웠을 때 그랬습니다. 그때는 마침 투자 회사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었고, 처음 금융 분야의 여러 개념을 접하며 마치 내가 아는 것이 대단히 많다고 느낄 때였습니다(더닝-크루거 효과).

그래서 제 나름의 조사를 하고, 나름의 논리를 세워 특정 종목을 분석한 뒤, 실제로 매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식이 제가 산 날부터 계속해서 오르는 겁니다. 심지어 제가 분석만 해놓고 아직 사지 않은 종목들까지 마구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 내 천재성을 여기서 찾는구나. 역시 이게 오를 줄 '알았어'. 주식 쉽네?"

그때 했던 생각입니다.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주고 싶네요.

제 머릿속에서는 완벽한 논리가 짜맞춰진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분석을 했고, 실제 결과 역시 분석한대로 됐다'라는 저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경험이 제가 주식 세계를 이해했다는 크나큰 착각을 하게 만든 겁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주식과 같이 결과가 금방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는 내 무지가 금방 탄로난다는 겁니다. 그때가 2018년 늦여름이었고요, 지금은 "2018년 검은 10월"이라고도 불리는 그 시기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제가 빠져있던 서사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과연?).

그래서 저자가 말한 문장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 이런 맥락에서 '안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의 고약한 점은 자격도 없는 사람이 선견지명이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에는 세상을 실제보다 더 인지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영원히 치명적인 착각에 빠질 수 있는 발상이다."

이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너무도 많은 요소가 작용하고, 그 중 상당수는 운의 작용이고, 또 우리는 그걸 모두 이해하기에 무지합니다. 이걸 알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치명적인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입니다.

주변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서사 오류' 개념은 그 사람들의 콧대를 확실하게 눌러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론 내 콧대를 먼저 눌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이는 그대로 믿었다가 실수한 적이 있나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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