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인생의 A면과 B면
듀오링고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Gina Gotthilf의 인생 조언
안녕하세요, 두 달만에 찾아온(!) 170번째 휴튼 레터입니다. 지난 주 서울에는 아직 단풍이 지지도 않았는데 눈이 어마무시하게 많이 왔습니다. 단풍나무에 눈이 두껍게 쌓여있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네요. ⛄️🍁
—
며칠 전 한 유튜브 영상에서 좋은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Scaling Duolingo, embracing failure, and insight into Latin America’s tech scene>라는 난해한 제목의 영상입니다. 제목에서 대충 유추할 수 있으시겠지만 듀오링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 영상입니다.
사실 이 영상은 저처럼 IT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공부하려고 보는 Lenny’s Podcast 채널에 올라온 영상이고, 내용 역시 게스트 지나 고트힐프(Gina Gotthilf)라는 사람이 어떻게 ‘듀오링고’라는 앱을 성장시켰는지에 대한 매우 실무적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래서 PM/마케터가 아니라면 영상을 직접 보는 건 굳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나 고트힐프가 초반에 한 이야기가 많이 와닿아서 오늘 레터에서 공유드리려 합니다.
듀오링고?
아마 많이들 알고 계실 듀오링고는 세계 1위의 언어 학습 앱입니다. 개인적으로 휴튼이 가장 닮고 싶은 앱이기도 한데요, 얼마나 대단하냐면 2024년 1분기 기준 하루에 앱에 들어오는 사용자 수가 무려 3천1백만 명입니다. '하루'에 '31,400,000명'!
직접 써보면 이 앱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느끼실 텐데요, 저는 듀오링고로 307일 째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공부한 결과 이제 한 문장 정도는 완벽히 말할 줄 아는데, 뭐냐면 “Je ne parle pas Français.”입니다. “저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모릅니다.” 라는 뜻입니다.
제가 해외 여행 갔을 때 이 한 문장으로 프랑스인 두 명을 박장대소하게 만든 일은 제가 평소 사골처럼 우려먹는 사소한 무용담입니다.
어쨌든, 지나 고트힐프는 듀오링고의 유저 수가 3백만 명일 때 입사하여 2천만 명까지 만들어놓고 나온 인물입니다. 엄청난 성과죠. 그 전에는 텀블러(Tumblr)에서 성장을 도왔고 결국 텀블러는 야후에 매각됩니다. 2020년에는 대선에 출마한 마이크 블룸버그의 대선 캠페인에서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사실 저는 듀오링고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지는데, 정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경력입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잠깐 딴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편의상 "A"라고 부를 어떤 사람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브라질에서 나고 자란 A는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고, 공부에 집중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었지만 결국 원하던 곳에는 단 하나도 합격하지 못한 채 다른 대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 대학교에서 심한 우울증을 겪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퇴를 하죠. 힘들어서 일단 자퇴는 했지만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어찌저찌 하다가 A는 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결국 졸업까지 마칩니다. 하지만 졸업을 할 때쯤 학교에서 취업 상담을 해주는 분으로부터 치욕스러운 말을 듣습니다.
“넌 도대체 인생에서 뭘 한 거야? 보여줄 게 아무도 없잖아?”
어쨌든 졸업을 했으니 취업을 하기 위해 수십 개 회사에 지원을 합니다. 대부분 떨어졌지만 한 곳에서 인턴을 하게 됩니다. A는 브라질 사람인데 뉴욕에 사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중소기업이었음에도 일단 입사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비자 처리해주는 걸 깜빡해서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로 브라질로 돌아가게 됩니다. 낙심하지 않고 심기일전하여 미국에 위치한 다른 회사에 취업했지만, 이내 또 해고를 당합니다.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죠. 얼마 후 다시 취업했는데 또 잘립니다.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A의 기구한 삶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꽤 괜찮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고 합니다. A는 ‘아 이제서야 내 인생에 조금씩 풀리는구나’라고 생각했죠. 다만 그 회사가 당시 아직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라 브라질 계좌로 급여를 송금하는 방법을 몰랐고, A는 6개월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합니다. 생활비가 없으니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다녔다고 해요.
얼마 후 그 회사는 매각되었고 직원들 중 일부가 해고를 당합니다. A도 그 명단에 포함되었죠. 그때의 나이가 27~28살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말 좌절과 해고로 점철되어 있는 삶입니다.
짐작하셨을 수도 있지만 사실 A는 지나 고트힐프입니다. 그녀의 화려한 경력 뒤에는 이런 지난한 스토리가 놓여있었습니다.
인생의 A면과 B면
지나 고트힐프는 인생이 마치 CD와 같이 양면적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 삶에는 멋진 모습(A면)도 있지만 동시에 전혀 멋지지 않은 면, 힘들고 부끄러운 면, 남에게는 숨기고 싶은 면(B면)도 있다는 것이죠. 당연히 사람들에게는 A면, 즉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래야 뽐낼 수 있고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몇 개의 하이라이트 사이에는 ‘B면의 순간들’이 자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려하지만 지나 고트힐프는 오히려 이에 대해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에는 A면보다는 B면이 더 많기 때문이죠.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B면을 ‘순간’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B면에 대해서 인식하되 그것이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지 않으면, 즉 내 삶의 A면은 보지 못하고 B면에만 매몰되어 이 상태가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면 그대로 주저앉고 포기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 고트힐프는 (자신의 고향인) 남미를 예시로 듭니다. 우리가 남미의 여러 국가들을 떠올리면 사실 B면을 떠올리기가 더 쉽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다, 저개발 국가다, 정부가 부패했다 등등. 하지만 남미 국가들에 A면도 분명히 많고, 이 부분에 초점을 더 맞춰야 한다고 지나 고트힐프는 얘기합니다. 삶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A면과 나의 B면
A면과 B면의 괴리를 극대화시키는 주범은 당연히 소셜미디어입니다. 남의 인스타를 보며 그 사람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로우라이트를 비교하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으니 굳이 더 얘기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삶이 B면을 향해있는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의 A면을 보고 아무 느낌도 갖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느낌이 들 때 제가 저 자신에게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이걸 지나 고트힐프가 얘기한 ‘A면과 B면’ 개념과 같이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누군가의 A면’은 어쨌든 결과입니다. 그 전에 필연적으로 과정이 있었을 테죠.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더 자극적인 것,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은 그 결과니까요.
하지만 (예를 들어) 누군가가 1년만에 큰 성공을 했다고 쳐도, 365일이라는 기간 동안 켜켜이 쌓여가는 그 시간을 견뎌내는 당사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큰 무게로 다가왔을지 밖에 서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밖에서 보는 사람은 그 1년을 ‘그 사람의 과거’로 뭉뚱그려서만 볼 수 있을 뿐, 실제의 하루하루를 직접 겪어보지는 못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A면을 보고 시기심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을 넘어 그 사람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 사람이 견뎌온 시간, 그 사람의 B면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결론은 내 삶이 지금 A면을 향해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도 B면이 있었음을, 또 언제든 다시 B면이 찾아올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 반대로 내 삶이 B면을 향해있다면 지금 A면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누구나 자기만의 B면을 거쳤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관점이라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은 사실 그럭저럭 평범한데,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중독적으로 소비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의 A면과 B면의 괴리를 지나치게 크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삶에 B면이 존재한다는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사실에 불필요한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요.
그럴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현명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리석은 관점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