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튼 레터]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사고방식
레이 달리오의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
요즘 벽돌책으로 유명한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읽고 있습니다. 무려 700쪽에 달하는 책이라 매일 후회하며 한장 한장 넘기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책의 일부를 소개드리려 합니다.
우리 삶은 수많은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삶이라는 것이 결국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직접 주조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선택은 좀 대충 내려도 됩니다. 저는 오늘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을지 김치찌개를 먹을지 깊이 고민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하나 신중하게 내려야 하는 선택들도 있습니다. 나아가 정말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죠. 매일 하는 업무에서의 의사결정일 수도, 향후 커리어에 대한 결정일 수도, 배우자에 대한 결정이 될 수도, 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판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자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 휴튼 레터에서 몇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선택을 함으로써 내가 잠재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잃을 것보다 큰지(비대칭적 기회), 이 결정이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결정인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인지(양방향 문 Vs. 일방향 문) 등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
브릿지워터(Bridgewater Associates)라는 세계적인 헤지펀드가 있습니다. 꼭 투자 업계에 있지 않더라도 투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마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브릿지워터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 회사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라는 이름은 들어보셨겠죠.
그의 책 <원칙>에서, 레이 달리오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반복적으로 내리며 성공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원칙’이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쌓아온 수많은 원칙들을 나열하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강조하는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radical open-mindedness)’를 소개드리겠습니다.
레이 달리오가 말하는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란, 내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매우 투명하게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뻔한 얘기인가요? 하지만 우리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1. 책에서 ‘자아(ego)’라고 표현되는 자존심입니다. 우리에게는 실수를 하거나 약점을 들켰을 때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행동하는 대신 방어적으로 변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고를 닫히게 만듭니다.
2. 두번째는 사각지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고 레이 달리오는 말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우리는 더 개방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는 당신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걱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싶다면 우리는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좋은 결정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너무 크니까요. 진심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싶다면 우리는 문제를 최대한 다각도로 평가하고, 취할 수 있는 모든 훌륭한 생각을 고려해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아와 사각지대라는 두 가지 방해요인에 갇혀 자기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레이 달리오는 이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열린 사고는 자아나 사각지대가 자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른 관점과 다른 가능성을 효율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위해 외부로부터 도움과 조언을 얻어야 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얘기에도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봐야 합니다. 또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괜히 똥고집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아와 사각지대에 갇혀있지는 않으신가요?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 위해 얼마나 다각도로 고민해 보았나요?
사회 차원에서의 열린 사고
극단적으로 열린 사고는 개인 차원에서도 무척 중요하지만, 공동체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특히 협력과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한 합의로 굴러가는 공동체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많은 것이 양극화되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극단적으로 열린 사고가 극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치가 있습니다. 정치에서 내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 상대방의 논리도 들어봐야 한다는 사고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슨무슨이즘’ 또는 ‘무슨무슨주의’로 불리는 각종 이념에 자기 스스로를 가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념에 갇혀버리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악마화하고 무조건적으로 배척합니다.
이것은 언론과 여론에 의해 더욱 증폭되어 점점 감정 싸움이 됩니다. 즉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는 싸움으로 왜곡됩니다. 나의 말을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말을 진정성있게 경청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상대편'의 말로부터 귀를 막는 또 다른 이유는 지적 게으름입니다. 내가 기껏 이것이 옳다고 믿어왔는데, 상대방이 다른 논리를 펼치면 내가 가진 (나름의) 논리를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심지어 거기에 설득당하면 내 논리는 버리고 상대방의 논리를 따라야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이지만, 많은 영역에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듯합니다. 위태로운 내 생각을 다시 검토하기보다는 그냥 눈 감고 귀 막은 채 나쁜 새끼들이라고 욕하는 게 훨씬 편하고 속시원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양극화되어 갑니다.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라는 목표는 잊혀지고, 모두가 열심히 내가(우리 편이) 옳다고 외치기 바빠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원칙>에는 굉장히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바로 “판단 유보”인데요, 레이 달리오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열린 사고는 당신이 믿지 않는 것에 동의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의 생각을 비논리적이고 고집스럽게 주장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논리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열린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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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여론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이 <군중심리>에서 말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독립된 개인보다 항상 지적으로 열등하다.”
물리적인 공간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어떤 특정 집단에 속해있을 때 우리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군중의 일부’가 되어 무척이나 감정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이 A라고 지나치게 외치면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의 극단에 있는 Z부터 차근차근 생각해보려 합니다. 이것은 A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Z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섣부른 판단을 유보한 상태로 사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레이 달리오가 개방적인 마인드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아무나 붙잡고 의견을 물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이 달리오가 말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문제를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완료하며 어떤 사람들이 캐물어도 자신의 접근법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나요? 여러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마지막으로 책에서 좋았던 문장과 함께 오늘 레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상태로 어느 정도 방황하지 않으면 훌륭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