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 글에서는 각 개인의 안에 사는 욕구의 문어(The Yearning Octopus)를 소개드렸습니다. 이 문어에게는 다섯 개의 다리가 있는데, 각 다리는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르고 모두 자기 목소리만 내기 바쁩니다.
1. 개인적 욕구 다리 : 이 녀석은 자아실현, 의미 등을 추구합니다.
2. 사회적 욕구 다리 : 이 녀석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 평판, 명예 등을 중시합니다.
3. 라이프스타일 욕구 다리 : 이 녀석은 편안하고 균형잡힌 일상을 원합니다.
4. 도덕적 욕구 다리 : 이 녀석은 사회에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서만 생각합니다.
5. 현실적 욕구 다리 : 이 녀석은 당장 오늘 내 통장 잔고를 걱정해줍니다.
*이 글은 제가 즐겨보는 블로그 Wait But Why에 올라온 <How to Pick a Career (That Acutally Fits You)>입니다. 원문이 워낙 길어서 문장 단위로 번역하지 않고, 핵심 메시지만 번역하여 정리했습니다. 그마저도 여러 글에 나눠서 옮겨야 할 것 같네요. 원문이 훨씬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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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The Cook and the Chef 프레임워크
2편 : 커리어맵
3편 : 욕구의 문어
4편 : 가면 쓴 녀석 찾아내기
5편 : 욕망의 위계 파악하기
6편 : 현실
7편 : 점 찍기
8편 : 다른 점으로 나아가기
### 문어 찾기
이번 글에서는 이 욕구의 문어를 분해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안의 문어가 가진 각 다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커리어, 두려움, 꿈 등은 이 문어의 추상적이고 총체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보통 다섯 다리 중 목소리가 가장 큰 녀석이 우리가 인지하는 문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 다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나 자신의 내면, 즉 무의식으로 깊이 들어가 보죠.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공간은 깜깜한 곳입니다. 너무 어두워서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욕구의 문어를 자세히 보지 못하죠. 이 공간을 더 밝게 만드는 방법은 내가 의식의 영역에서 느끼는 욕망, 두려움 등을 먼저 제대로 인지하고 열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게 정말 완벽해 보이는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있다고 해봅시다. 근데 나는 지금 그 커리어 패스 위를 걷고있지 않아요. 왜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실패가 두려워서 그 커리어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보죠. 그런데 여기서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두려움을 한번 열어보자는 겁니다.
이 실패에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사회적 욕구 다리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봐 두려워하는 건가요? 개인적 욕구 다리가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할까봐 그런 건가요? 라이프스타일 욕구 다리가 내 편안한 일상이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모든 다리들이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커리어에 도전하지 못하는 원인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커리어를 바꿈으로써 생기는 내 정체성의 변화가 싫은 것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일단 가져와서 한번 열어보고 대체 내 문어의 어떤 다리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내가 표면적으로 인식하는 나의 느낌, 욕구를 가져와서 열어보고 더 깊이 파보면, 결국 내 내면의 욕구의 문어가 가진 각 다리 중 하나(또는 여러 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가진 욕망의 근원을 계속해서 찾다보면, 깜깜했던 내 무의식의 영역이 점차 밝아지며 진정한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또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문어의 다리 중 어떤 녀석이 가장 목소리가 큰지, 그래서 내가 내리는 결정들을 주도하는지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내 안의 어떤 욕망이 억눌리고 어떤 욕망이 더 우위를 차지하는지 등, 내가 가진 욕망의 위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 가면 쓴 녀석 찾아내기
여기까지 내 안의 문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파악했습니다. 그란데 말입니다.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아있습니다. 이제 문어의 각 다리를 떼어내서 취조실로 데려가야 해요.
각 다리, 즉 내가 가진 각각의 욕망을 취조실로 데려간 뒤에, 너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고 지금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캐물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욕구, 믿음, 가치관, 두려움 등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생겨날 수도 있고, 외부에서 주입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취조실에서 각 다리를 대면하며 해야 할 것은 이겁니다 : 이 녀석들이 진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욕망이 나인 척 하며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기.
이 취조는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요?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 합니다. 나는 왜 이걸 원하는 거지? 이에 대해 A라는 답이 나왔다고 해봅시다. 그럼 나는 왜 A를 원하지? 라고 다시 물어봅니다. 여기에는 또 B라는 답이 나왔다고 해봅시다. 이번에도 그럼 나는 왜 B를 원하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많은 경우 아래 세 가지 중 하나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1. 깊은 고민을 통해 탄생한 가치관 : 이 녀석은 얼굴을 잡아 당기면 안 됩니다. 진짜 피부거든요.
2.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가치관 :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부모님이 원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내가 스스로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 녀석은 얼굴을 잡아 당겨 가면을 벗겨내야 합니다. 그럼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날 겁니다.
3. 혼란 : “왜”를 계속 캐묻긴 했는데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그냥 아는 것 같은 상태입니다. 이건 1번일 수도 있고 2번일 수도 있는데요, 아마 직관적으로 무엇인지 스스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내 내면에게 계속 “왜”를 던졌는데 1번에 도달했다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셔도 좋습니다. 그 욕망은 스스로 치열한 고민을 통해 얻어낸 진짜 내것이 맞으니까요.
만약 2번 또는 3번에 도달했다면 나는 지금까지 속아온 겁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와서 내 욕구의 문어를 조종한 거거든요.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chef가 아니라 cook의 접근법으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던 겁니다.
사실 1번은 흔치 않은 케이스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조실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기존의 관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공통된 가치관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혹은 어디에선가 인상깊게 읽은 글, 내 롤모델이 어디에서 했던 말 등에 영향을 받죠. 심지어 내가 일곱 살 때 막연하게 원했던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취조는 분명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왜냐면 나는 더 이상 일곱 살의 나도 아니고, 내 부모님도 아니고, 내가 속한 공동체도 아니고, 내 롤모델도 아니고, 어디에선가 읽었던 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의 나일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은 지금의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아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현명한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롤모델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공동체에 속하는 것도, 좋은 글을 읽는 것도,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것도 모두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들을 하나의 정보로써 참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나를 조종하게 할 것이냐입니다.
당연히 누군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욕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직접 경험하여 얻은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가 말해준 것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 건가요? 전자는 chef의 자세이고, 후자는 cook의 자세입니다. 내가 욕망하는 것, 내가 살고자 하는 삶, 갖고 싶은 커리어를 cook의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 문어 재구성하기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 욕구의 문어가 꽤나 초라해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알던 문어가 맞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를 알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구요, 이를 거쳐 실존적 위기까지 겪을 수 있습니다. 다행인 건, 이게 모두 좋은 신호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 하고 있는 거예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평생 끝마치지 못할 과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자 합니다. 굳이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지금 형성되어 있는 내 욕구의 문어의 모습에 따라 사는 것이죠.
하지만 이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고, 내 안의 욕구의 문어를 진짜 나의 모습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우리는 치열한 취조를 통해 욕구의 문어를 낱낱이 벗겨냈습니다. 내가 아닌 부분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이렇게 듬성듬성 초라해진 문어를 어떻게 진짜 내 모습으로 채워넣을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Q.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건 어떻게 만들어졌나요?